사회복지의 최종 목표는 모든 사람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일게다. 다시 말해 사람이 사람다움을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사회복지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사회복지란 social welfare로서 사회(social)와 복지(welfare)의 합성어이다. 여기에서 복지(welfare)란 well과 fare의 합성어로 well은 satisfactorily, successfully, property fitting, reasonably 등의 뜻이고, fare는 state of thing으로 welfare는 불만이 없는 상태, 만족할 만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복지(welfare)에 사회(social)란 말이 합성된 사회복지는 사회구성원들이 행복한 생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국가들은 형식적이든,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든 사회복지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어떤 국가, 어느 사회도 완전한 사회복지 상태를 실현하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 곳도 없다. 왜, 모든 국가들은 잔여적이든, 제도적이든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복지국가 실현이 불가능한 것일까? 이미 복지국가라고 하는 북유럽조차도 사회복지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러면 사회복지의 한계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한계란 상황, 힘, 책임, 능력 따위가 다다를 수 있는 범위를 이르는 말로 사회복지의 한계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재정적인 한계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든 민간이든 재정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재정을 무한정 투입할 수 없기에 적당한 범위를 정해놓고 그만큼만 재정을 투입한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완전한 사회복지 실현을 위해서는 당연히 재정적인 한계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재정적인 한계는 북유럽 국가들에서조차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제도적인 한계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사회복지에 대한 욕구가 높아도 제도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면 복지국가 실현은 요원하다. 그러므로 사회복지 실현에 있어서 중요한 한계가 바로 재정과 제도적인 문제일 것이다.

얼마 전 설 명절을 앞두고 벧엘의집 울안공동체에서 생활하다가 요양병원으로 가신 다음 요양원으로 다시 자리를 옮긴 김 0 0 아저씨 면회를 다녀왔다. 이 분은 노숙인이지만 장애와 질병으로 인해 노숙인 시설에서는 더 이상 생활할 수 없어 좀 더 나은 시설로 옮겨 간 곳이 바로 요양병원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요양병원에서도 오래 있지 못하고 요양원으로 다시 전원조치 되었다. 그래서 가끔 연락하면서 근황을 알아보곤 했는데 설 명절도 다가오고 하여 울안공동체 일꾼들과 찾아갔던 것이다. 면회를 갈 때까지만 해도 울안공동체보다는 환경이 좋은 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면회를 마치고 오는 길은 가슴에 바위덩어리가 얹혀진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의식은 정상이고 단지 하반신을 움직이는데 어려움이 있는 분에게 중증 치매환자가 있는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보였다. 따로 운동하는 시간도 없이 방안에서만 생활하자니 여간 고역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 당연히 등에 욕창이 생기기도 하고 거기에다 함께 생활하는 분은 중증치매환자여서 말벗도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분의 말을 빌리자면 함께 생활하는 분을 또라이라고 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얼마나 길고 힘들겠는가?

그런 상황을 알지만 현재 사회복지 제도로는 그분을 위한 시설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하여 마음의 짐을 덜어 보고자 대덕구 보건소장인 김주연소장과 대덕구에서 시행하고 있는 노인 커뮤니티케어의 도움으로 지역사회에서 지내는 방법도 찾아보았다. 그런데 그것도 제도적인 한계로 불가능했다. 김 0 0 아저씨에게는 현재 사회복지 제도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이런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 어쩌면 나 자신조차도 그것은 당연한 우리의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만 관심을 더 가지고 노력하면 가능한데도 그런 분은 어쩔 수 없다는 스스로 경계를 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계는 극복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어떤 경계를 정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방법을 찾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김 0 0 아저씨 미안합니다. 그러나 절대 가만히 있지는 않겠습니다. 그것이 한계라면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찾아보도록 할께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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