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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억울한 죽음이 더 이상 없는 사회가 되길 외쳤건만...
원용철 목사  |  bethelhouse52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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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6  1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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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3)물어 보게 하였다.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4)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5)눈 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하게 되며,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마태복음 11:2-5)

올해도 어김없이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 저녁 우리는 대전역 광장에 모여 거리에서 죽어간 영혼들을 추모하며 우리 사회를 향해 억울한 죽음이 없는 사회를 만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다가 거리에서, 쪽방에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우리의 곁을 떠난 또 다른 나를 봅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특히 올해는 두 분이 거리에서 저체온증 다시 말해 얼어 죽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지만 사람들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받지 못하고 홀로 외롭게 체온이 떨어져 얼어 죽은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만 있어도 그분들은 그렇게 허망하게 생을 마감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죽어가고 있는 그분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체온이 떨어져 죽음의 문턱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곁을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제발 살려달라고 절규했을지도 모릅니다.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고...

가난이 무슨 큰 잘못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가난하기에 병에 걸려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고, 가난하기에 재개발로 쫓겨나야 했습니다. 가난하기에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사회를 향해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범죄자 취급을 받았고, 게으르다,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지금 가난은 내 삶의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라는 강요까지 받았습니다. 죽어가는 순간까지 가난이 죄가 되고 불의가 되어 당연히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가난이 왜 내 잘못입니까? 나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잘 살아 보려고 노력도 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나를 이 지경이 되도록 밀어내기만 했습니다. 배운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어 그저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늘고 병들게 되었습니다. 잘 살아 보려고 이것저것 해 보았지만 나에게만 불행이 닥치는 것처럼 실패의 쓴 맛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이 사회를 향해 더 이상 이런 억울한 죽음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우리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런 소리는 하지 말라고 합니다. 살아있는 것에 만족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소 돼지가 아닙니다. 우리도 사람답게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소중한 인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외치지만 말고 직접 행동으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함께 연대하여 더 이상 사회적 타살, 억울한 죽음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갑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바로 지금이 그 때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우리자신이 인간다운 역사를 만들어가야 할,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갈 주체임을 선언합니다.

오늘 성경을 봅시다. 오늘 성경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묻습니다. 바로 당신이 오실 그 분이 맞느냐고? 아니면 더 기다려야 하느냐고? 그러자 예수님은 “눈 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며,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그 분이 맞느냐는 질문은 다시 말하면 지금 우리가 행동할 때냐는 물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30년 전에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신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 때 그들은 가슴이 벅찼고, 이제는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자신들이 그 세상을 만들어가야 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그 희망은 다시 절망이 되고, 과거의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다시 30년이 흘러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셨던 예수님이 때가 되었다고 선포하십니다.

해방의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억압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나섭시다. 더 이상 외치지만 말고 비록 한 사람은 연약하지만 함께 연대하여 새로운 시대,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열어갑시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지금이 우리가 행동할 때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당신도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누가는 “그는 해를 하늘 높이 뜨게 하셔서,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바로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평화의 길을 만들어 가게 하십니다.

용기를 냅시다. 그리고 함께 연대하여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가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그것이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에 모이게 했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요, 2천 년 전 말구유에 오신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거룩한 대림절 영성인 것입니다. 함께 연대하여 평화를 만들어갑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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