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계서원 단체 기념
▲ 함양국악제

대전대학교는 지난 9일(토) 일반대학원 동문회 및 학생회 주관 역사문화유적 탐방 행사를 개최 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대전에서 출발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고택(古宅)과 남계서원(灆溪書院), 학사루(學事樓), 상림숲 산책 등의 일정으로 진행 됐다.

이날 최예열 교수(대전대)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대학원 학생회 채선희 회장, 한수미 총무, 양희원 간사가 함께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일두 정여창은 자는 백욱(伯勖), 호는 일두(一蠹), 시호는 문헌(文獻),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함양(咸陽) 출신이다. 판종부시사 정지의(鄭之義)의 증손으로, 조부는 판전농시사 정복주(鄭復周)이며, 부친은 함길도 병마우후 증한성부좌윤 정육을(鄭六乙)이다. 모친은 목사 최효손(崔孝孫)의 딸이다.

▲ 문화해설사 남계서원 설명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혼자서 독서에 힘쓰다가 김굉필 · 김일손과 함께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고, 지리산에 들어가 5경(五經)과 성리학을 연구했다. 1480년에 성종이 행실과 경학에 밝은 사람을 구하자 성균관에서 정여창을 제일로 천거하였지만 사양했다. 1490년에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하고 예문관 검열을 거쳐 시강원 설서(說書)가 되어 연산군을 지도하였다. 1495년에 안음현감에 임명되어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특히, 정몽주-김숙자-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조선전기 사림파의 주자학적 학문을 계승하였다.

▲ 문화탐방기

고택은 40여채가 넘으며, 당시 출퇴근 노비만도 35명이 넘었다고 문화해설가는 전했다. 또한, 집안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송솔주는 대통령에게 진상되었으며 고택 홈스테이(1박:약 10만원)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돌담길과 기와지붕 사이로 아늑함과 정제된 한옥 특유의 아름다움이 독특한 운치를 더했다.

남계서원(사적 499호)은 경남 함양군 수동면 남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동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이서원은 고려말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을 모신 영주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졌다. 조선시대 서원이 번성함은 세력과 비리가 동반되었으며 급기야 흥선대원군에 의해 서원 철폐를 단행하게 되었고, 전국에 47개만이 존재하게 되었는데 그중에 하나이다.

▲ 남계서원 사당길 탐방

서원(書院)은 조선 중기 이후 선현에 제사를 올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사림들이 설립한 사설교육기관이다. 함양의 ‘남계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된 한국 고유의 문화유산이다.

학사루(學事樓)는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이 누각에 자주 올랐다 하여 학사루라 불리었고 통일신라시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관아에 딸린 건물로 옆에 객사가 있었고, 동쪽에는 제운루, 서쪽에는 창사루, 남쪽에는 망악루가 있었다고 전한다. 지방관리가 피로한 마음을 풀기위하여 이곳에 올라 시를 짓고 글을 쓰며 몸과 마음을 달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영남학파 거두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이 군수로 부임하여 이곳에 걸린 유자광(柳子光, 1439~1512)의 현판을 철거한 것이 1498(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 남계서원 역사이야기 경청

상림숲은 경남 함양의 서쪽에 있는 위천 강가에 있는 숲으로 1,100여년전인 신라 진성여왕 때,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고운 최치원이 조성한 우리나라에서 아주 오래된 인공 숲이다. 함양태수로 부임한 최치원이 위천강의 잦은 범람으로 주민들의 피해가 잦자 둑을 쌓고 나무를 심었다고 전한다. 당시에는 대관림으로 불렀으나 홍수로 인해 중간에 쓸려나가며,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었고 그 후 마을이 들어서며 하림은 사라졌다고 한다. 쑾사이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과 물레방아가 있으며, 연꽃재배지가 여름에 장관을 이룰 것 같았다.

▲ 상림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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