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7일은 ‘세계 주거의 날’이었다. 세계 주거의 날은 1985년 12월, UN에서 제정한 날로 매년 10월 첫째 주 월요일을 세계 주거의 날로 정했다. 이날은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는 안락한 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지지하게 함으로써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모든 사람이 집을 소유할 수 있는 좋은 환경으로 바꿔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 살거나 집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전 세계에서 1분마다 20명이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사망하고, 전쟁이나 가뭄으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약 5,000만명이다. 또한 세계 16억 명이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살고 있고, 이 중 10억 명은 빈민가에 살고 있다. 2030년에는 약 20억 명의 인구가 빈민촌에 살고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비적정 주거가구가 380 만명으로 되어 있고, 국토부에서 조사된 자료에는 비주거 37 만명, 본인이 쪽방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가구가 7만 4천 가구로 조사되어 있다. 또한 치솟는 전세값으로 인해 2년마다 메뚜기처럼 이사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주거현실이다. 그래서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주거운동단체, 종교, 빈민단체, 시민사회 등 약100개 단체가 국회에 모여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연대’ 출범식을 갖고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한 국민 주거복지 실현, 안정된 주거권 실현을 위한 5대 요구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개정연대의 요구안은 다음과 같다.

1) 계약갱신청구권(계속거주권) 도입
 2018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월세 세입자 가구의 평균 계속거주기간은 3.4년으로 자가 가구의 10.2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 상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한 규정이 없어 계약기간 중에만 제한 규정의 효력이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주택 임차인들은 계약 기간 2년이 종료되면 임대인의 일방적인 보증금 또는 월세 인상 요구에 응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반면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의 선진국들은 임대차 계약 갱신을 보장하고 있으며, 예외적인 경우에만 임대인의 갱신 거절이 인정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임대인의 갱신 거절을 허용하는 제도(계약갱신청구권)를 도입함으로써,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주택 임차인(세입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서는, 계약갱신청구권의 도입이 필수적입니다.

상가 임대차의 경우, 2001년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정 당시부터 5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인정하였고 작년 그 기간이 10년으로 연장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민 생활의 기초인 주택임대차에 있어서 이러한 갱신제도가 아직까지 도입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행 법제도에서는 주택임차인에게 갱신청구권이 인정되지 않으며, 이에 따라 임차인은 임대인의 일방적 요구 조건을 수용하지 않고서는 임대차 계약을 갱신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에 따라 현행 주택임대차 제도 개선과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계약갱신청구권이 도입되어야 합니다.

2)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 도입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42%가 전월세 임차가구인 상황에서 전월세가격의 폭등은 국민 대다수에게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부동산 시장은 전세값 폭등, 급격한 월세전환 등으로 인해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저금리에 따른 임대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전세 물량이 더욱 줄어들어 서민들의 월세 부담이 가중되는 실정입니다.

이미 독일, 영국, 프랑스, 뉴욕 등 주요 국가에서 이와 유사한 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도 형식적으로나마 증액 인상률 상한제도(주택임대차보호법 제7조)와 월차임 전환율 상한제도(주택임대차보호법 제7조의 2)를 규정하고 있으나, 계약 갱신청구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계약 기간 2년이 지나면 증액 인상률 제한제도와 월차임 전환률 상한제도는 소용없게 됩니다. 따라서 전월세인상률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이 동시에 도입되어야 임차인 주거 안정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수 있습니다.

정부는 전월세인상률상한제가 도입되기 직전에 전세가격이 한꺼번에 오를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제도의 도입을 반대해왔습니다. 그러나 법 개정 즉시 효력이 발생하도록 하면서 존속중인 주택임대차 계약에도 인상률상한제를 적용하면 법안 시행 전에 임대료를 급격하게 인상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2018년 상가임대차보호법 시행령 개정으로 임대료 인상률 상한을 연 9%에서 연 5%로 낮출 때에도 개정 시행령 부칙에서 “시행 당시 존속 중인 상가건물 임대차계약에 대해서도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시행령 공포와 함께 즉시 시행해 시장에 아무런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 것을 이미 확인하였습니다.

3) 전월세 신고제도 도입
한국의 가장 큰 블랙마켓이 바로 주택 전월세 시장입니다. 현재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확정일자 신고로 약 23% 정도의 주택 임대차 신고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보증금 액수가 비교적 작은 월세 임차인이나 오피스텔 등 임대인의 요구로 확정일자를 신고하지 않음으로써 정확한 전월세 거래가 신고 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모든 전월세 거래는 공인중개사가 있는 경우 공인중개사가 신고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임대인이 신고하도록 의무화해야 합니다. 주택 매매 거래가 실제 거래가액 등으로 신고 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이를 통해 같은 건물, 인근 지역의 보증금과 월세 규모가 투명하게 공개되도록 할 경우 임차인이 제대로 정보를 얻지 못해 과도하게 높은 금액으로 보증금이 설정되어 나중에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거나 떼이게 되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고, 임대차 시장도 안정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4) 임차보증금 보호 강화
최근 역전세난, 깡통전세가 확산되는 가운데 계약 만료 후 보증금 반환에 대한 임차인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장치로 전세권설정, 확정일자 설정, 전세보증금반환보험 등의 방법이 있습니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에는 임차인이 임차주택에 대해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의 확정판결이나 그밖에 이에 준하는 집행권원에 기한 경매를 신청을 해야만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임차인들의 임차보증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주택 가격, 선순위 세입자, 국세 미납 등의 주택 공시를 강화해야 합니다. 또한 임대차거래시 공인중개사 또는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해당 주택의 시세(인근의 실거래가 기준), 인근의 유사한 주택 임대료 시세(실거래가 기준), 해당 주택의 선순위 채권 내역, 경매 낙찰가율 등을 자세히 설명하도록 법제화하여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임차인들의 보증금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5) 비교 기준 임대료 도입
주택 임대차 갱신청구권이 보장되면 임대인과 임차인이 계약 갱신 시점에 임대료를 협의해야 하는데, 이때 인상 여부나 인상의 폭에 대해 협의가 되지 않으면 분쟁조정 절차를 통해 임대료가 정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임대차 조건 협의나 분쟁 조정기구의 임대료 분쟁 조정에 사용할 수 있는 ‘비교 기준 임대료’가 매년 조사되어 공표될 필요가 있습니다. 비교 기준 임대료가 조사되어 공표된다면 임대인과 임차인은 이를 참고해서 협의를 할 것이고, 분쟁조정기구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조사한 지역별, 주택 유형별 임대료 기준을 참고하여 분쟁 조정을 하는데 참고할 것입니다.

비교 기준 임대료 제도는 △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 및 임대인과 임차인이 대등하게 임대료 교섭 가능 △ 지자체 주택임대차 행정의 기초적 인프라 구축, △ 임대료 인상률 상한제 범위 내에서 실질적인 적정 임대료 형성에 기여, △ 주택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 과정에서 참고 △ 비교 기준 임대료 공시만으로도 임대인과 임차인이 실제적인 인상 가능 폭을 예상할 수 있게 되어 임대차 시장 안정화 등의 효과를 꾀할 수 있습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연대 5대 요구안)

주거문제는 곧 빈곤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빈곤하기에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할 수 밖에 없고, 열악한 주거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은 곧 빈곤가구라는 반증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치솟는 전세값을 감당할 수 없어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10월 첫 주 월요일이 ‘세계 주거의 날’이라면, 10월 17일은 UN이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기도 하다. 무슨 운명의 장난이라도 되는 걸까? 같은 달에 서로 운명처럼 상호 연관성을 갖고 있는 주거문제와 빈곤문제를 해결하자는 날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날 마찬가지로 반 빈곤단체와 주거복지운동단체 등이 다시 모여 빈곤철폐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역별 소득 상위0.1%와 하위10%의 소득격차가 가장 높은 서울의 경우 3,056배, 가장 낮은 전남의 경우에도 1,456배에 달한다. 소득 상위20%의 가구당 소득을 하위20%의 가구당 소득으로 나누어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5분위 배율이 2019년 2분기 5.30배로, 2003년 통계작성 이후 역대 최대치를 보이고 있다. 또한 30명의 부유한 사람들이 1만1천호의 임대주택을 보유하며 부동산 장사를 통해 불로소득을 챙기는 동안 227만여 가구는 거리‧쪽방‧고시원‧옥탑‧반지하와 같이 집이 아닌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빈곤과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사회안전망은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사회안전망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예산에 가로 막히고 있다.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예산과 저울질하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은 굶어 죽고, 가족을 살해한 뒤 자살하고, 최소한의 안전조차 담보되지 않는 집에서 화마에 휩쓸리고 있다. 더불어 화려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개발은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생계수단인 노점상인들의 생존권을 빼앗고, 개발지역의 원주민과 상인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며 개발폭력에 의한 죽음까지 발생시키고 있다.

우리는 UN에서 정한 세계빈곤퇴치의 날인 10월17일 오늘을 빈곤철폐의 날이라 명명하고 빈곤 없는 세상을 향한 요구를 외치며 투쟁할 것을 선언한다. 빈곤은 가난을 동정과 시혜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가난한 사람의 삶을 전시하며 호소하는 구호와 원조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러한 방식은 가난에 대한 차별과 처벌을 정당화하고 고착시켜왔을 뿐이다.

우리는 빈곤을 만들어내는 사회에 맞서 싸우고 있는 노점상, 철거민, 임차상인, 장애인, 홈리스, 쪽방주민들이다. 빈곤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을 빼앗는 사회에 저항하고 연대하여 싸울 때 끝장낼 수 있다. 우리는 개발 때문에 쫓겨나지 않는 세상, 가난 때문에 죽지 않는 세상을 위해 싸울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빈곤과 불평등 없는 세상, 평등과 평화가 도래한 세상을 만들 것이다. (1017 빈곤철폐의 날 기자회견문)

이처럼 적정한 주거환경을 법으로 보장하는 것이 빈곤을 줄여가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모든 국민에게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주거권을 실현해 내는 것이다. 헌법 제35조는 모든 국민이 국가에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권리와 쾌적한 주거생활 유지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안정적이고 쾌적한 주거환경 요구는 당연한 권리이다.

국가는 모든 국민이 안정된 주거를 할 수 있도록 모든 정책적 수단을 동원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주거권을 실현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선은 2년마다 이사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주거정책의 전환을 통해 주거 빈곤층이 개발 때문에 쫓겨나는 일이 생기지 않게 될 것이며, 최소한 가난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주거복지의 실현은 곧 탈 빈곤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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