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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없는 사회, 기본소득을 향한 첫걸음
원용철 목사  |  bethelhouse52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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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11  06:3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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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의집 창립 20주년 기념행사 다섯 꼭지 중에 세 번째 꼭지가 “빈곤 없는 사회, 기본소득을 향한 첫걸음”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기념세미나입니다. 벧엘의집이 가장 현실에서 부딪치는 노숙인 문제, 주거문제, 빈곤문제, 사회복지관련 주제가 아닌 약간은 뜬금없는 기본소득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제도가 노숙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우리사회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엄청난 저항에 부딪쳤습니다. 포퓰리즘이니, 뜬구름 잡기니, 그저 현실을 전혀 모르는 철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니,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기에 실현 불가능한 제도니 하면서 사회적 논의조차도 배척당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최근들어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어느 정도 형성되면서 보편적복지의 새로운 대안,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인식에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서는 기본소득을 이 시대 새로운 신앙으로, 새로운 복음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아직도 일각에서는 기본소득제 주장은 국가의 책임이나 사회복지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기는 합니다.)

이렇듯 이제는 우리사회에서도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는 시민사회, 사회복지 영역, 빈민운동단체, 농민단체, 학계, 진보정당, 종교단체, 지방정부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조금씩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서울, 경기도 등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기본소득제의 실험을 구체적으로 실시하고 있기도 합니다.(얼마 전부터는 전국 농촌목회자회에서 농민기본소득제에 대한 연구 및 실현 운동을 펼치고 있기도 합니다.)

이제 기본소득 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복지의 실현, 사회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벧엘의집도 2017년 노숙인 추모제에서 “노숙인도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대우를 받는 세상을 꿈꾸며”라는 선언문에서 노숙인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으려면 노숙인 기본소득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 해를 돌아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 우리는 가난과 질병,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평생을 노숙인이라는 멍에를 메고 살다가 쓸쓸히 생을 마감한 또 다른 나를 만납니다. 한 인간으로써, 한 사람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한 평생을 살다가 떠난 똑같은 인생이지만 왜 이들은 노숙인이란 낙인으로 국가로부터도 버림받은 채 허기진 삶을 살다가 쓸쓸히 죽어 갈 수 밖에 없는 걸까요? 이들도 우리사회에서 인간다운 대우를, 국민으로서의 당당한 대우를 간절히 바라며“나도 인간이고, 대한민국 국민입니다.”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치며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사회가 최소한 이들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임을 인정하고 노숙인도 한 인간으로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면 비록 허기진 삶이었을지라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략) … 노숙인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본소득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기본소득이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국가가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으로 보편적 복지 그 이상의 모든 국민이 적절한 삶을 보장받는 국민이 승리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어떤 경제체제든 생산-유통-소비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며 돌아가지 않을 경우 그 체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는 극단적인 이윤 추구 속에서 소득 분배가 너무나 불균형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수가 소비할 수 있는 몫 자체가 심각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의 조건을 빼앗기면서 사회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자유주의 체제의 최대 피해자가 바로 우리사회의 가장 밑바닥계층인 노숙인 입니다. 그러므로 국가가 노숙인들을 수혜의 대상에서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의 국민으로 인정하는 행위로 기본소득제를 도입하여 최소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기본소득제가 국가가 국민들에게 공짜로 주는 시혜적 측면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기본소득제는 지속가능한 사회, 소비를 활성화해서 경제를 살리는 정책, 중소기업을 살리는 정책, 노동시장을 활성화하는 정의로운 국가를 향한 새로운 패러다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국가, 국민이 승리하는 국가를 위해서는 반드시 실현되어야할 제도이자 노숙인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하는 길입니다. …(이하생략)”(2017년 노숙인 추모제 선언문 중에서)

그러면 우리는 왜 기본소득을 말할 수밖에 없는가? 사실 기본소득에 대한 개념은 성경에도 나옵니다. 예수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보면 아침부터 일한 사람이나, 점심때부터 일한 사람이나, 저녁나절부터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이는 아침부터 일한 사람은 당연히 불만을 터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또한 기여한 만큼 돈을 받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늦게 고용된 사람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고용되지 못해 일을 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일 가능성이 높고, 이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한 데나리온 즉 한 가족이 하루를 살아가야할 최소한의 비용이기에 똑같이 주는 것이 정의라고 보았습니다. 기본소득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량은 누구나 같다는 점에서 출발합니다.

또한 미국 독립혁명의 주역인 토마스 페인(1737-1809) 또한 "토지 소유자에게서 국가가 지대를 거둬 남녀 시민에게 배당금을 나눠주자."란 주장으로 기본소득의 개념을 꺼내들었습니다. 이는 토지란 애초에 누구의 것도 아니었지만 독점하는 소유자가 생기면서 공유재산이 개인의 재산 축적에 이용되고 세습돼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실제 아메리카 대륙은 땅따먹기 하듯 먼저 땅을 점유한 사람이 주인이 됐습니다. 하지만 먼저 왔다는 이유만으로 영구적 소유를 하게 됩니다.이는 현대 대부분의 국가가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사회적 불평등은 토지의 소유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공유재산인 토지는 개인(혹은 국가)이 독점하고 후대에 세습하는 형태로 부의 세습이 쌓여 지금의 불평등을 낳았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금수저, 흙수저는 결국 자신의 노력이 아닌 세습된 부로 인한 불평등이 낳은 개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은 공유경제의 밑바탕에서 개인이나 기업이 독점해서는 안 되는 것들 즉 토지, 자원, 4차 혁명으로 통칭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첨단기술 등의 이윤을 함께 공유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기본소득은 노동을 생존을 위한 노동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노동이 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즉 노동을 파는 상품이 아닌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고,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노동이 되도록 함으로 인간다움의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나머지 재원문제, 지급액 등 기본소득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기본소득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우리사회가 지속가능하고 좀 더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로 나아갈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는 자리였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해 손을 맞잡고 힘찬 발걸음을 다시 20년을 향해 내디뎌봅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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