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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언젠가는....
원용철 목사  |  bethelhouse52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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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14  15: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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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의집 초창기에 여성쉼터 한나의집이 있었다. 대상자가 여성이기에 당시 담당자였던 이상봉목사가 함께 숙식하며 지내다가 결혼과 동시에 벧엘을 떠나면서 이상봉목사처럼 헌신적으로 일할 일꾼도 없고, 예산도 부족하여 잠시 쉰다는 것이 계속해서 쉬고 있지만 그당시는 대전의 유일한 여성노숙인쉼터였다. 그런데 한나의집이 언제부터인가 여성노숙인쉼터가 아닌 가출 청소년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여성노숙인쉼터 특성상 드러나지 않는 곳에 위치해야 한다는 당시의 원칙(?) 때문에 한나의집이 대전역에서 멀리 떨어진 목동지역에 있다가 벧엘의집과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 오고 가는 것부터 여러 가지가 불편하여 대전역 인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소를 정동으로 옮기고 나니 여성노숙인쉼터가 아닌 갑자기 가출 청소년 쉼터로 변해 버렸다.

편의상 햇님, 달님, 별님이라고 하겠다. 15세에서 16세의 가출 청소년들이 대전역에서 배회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가출 청소년들을 케어하는 청소년 상담보호센터로 안내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대전역을 배회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는 매일 저녁 10시에 대전역에서 컵라면 무료급식을 하고 있었기에 대전역을 배회하는 사람들은 그 시간에 라면을 먹으러 오기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청소년 상담보호소는 보호자가 있는 경우는 보호자에게 인계하는 것이 원칙이고, 청소년쉼터에서 생활하는 기간도 짧아 아이들이 집으로 복귀했다가 다시 가출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상황을 알고 나서 우선 한나의집에서 생활하게 하고는 별님이 집을 직접 방문하기로 했다. 별님이의 집은 대천이었다. 그 집을 직접 방문하고는 별님이가 왜 계속해서 가출할 수 밖에 없는지를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나 같아도 그 집에서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대천의 산골짜기 어느 시골집이었는데 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장애인이었고, 할머니는 중풍을 앓고 있었다.(별님이도 지능이 약간 떨어졌다) 그러니 집안은 사람이 살 수 있을 공간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꽃다운 나이에 온전한 정신으로 그런 집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겠는가? 당연히 네온싸인이 현란한 도시로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이후에 천안에 산다는 어머니와 통화했는데 어머니도 그집에서가출하여 다방 같은 곳에서 일한다고 했다.)

별님이의 집을 방문한 후 본격적으로 그 아이들의 인생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모두 중학교를 다니다 말았기에 대전에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예지학교에 입학시켰다. 처음에는 곧잘 다니는 것 같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결석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잔소리를 하면 하루 학교를 가고는 다시 결석을 되풀이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의 얼굴에 화장이 짙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혹시(?) 하는 마음이 들어 이상봉 목사에게 확인해 보라고 했더니 대강 짐작이 맞았다. 그러다가 점점 외박이 잦아지고 집에 들어와서는 잠만 자는 등 더 이상 한나의집이 품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햇님이와 달님이는 온다간다 말도 없이 연락이 끊어졌다. 그래도 끝까지 남아 있던 아이가 별님이었다. 그 아이는 공부는 싫고 미용사가 되고 싶다고 하여 미용학원을 보냈는데 그 이이도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고 끝내는 사라졌다. 그 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하나의집도 문을 닫고 그 아이들에 대한 생각도 엷어졌다.

그러다가 20여 년이 지나서 다시 대전역 거리급식을 하던 중에 햇님이를 만난 것이다. 참 반가웠다. 그간의 상황도 궁금하여 한 번 벧엘의집을 방문하도록 연락처를 주고 헤어졌다. 그리고 또 몇 개월의 시간이 흘러 다시 대전역에서 만난 것이다. 재차 벧엘의집 방문하라고 했는데 얼마 전 햇님이가 벧엘을 찾아왔다. 그때는 여러 일정이 많아 다시 만나 점심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는 헤어졌다.

그런데 정작 약속한 날 시간이 되었는데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겠지, 일정 부분 그럴 것이라 짐작하고 아내와 냉면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늦게 일어났다고 하면서 점심시간이 다 지나서 찾아왔다. 그래도 약속이니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먹으며 무슨 일을 하냐? 생활은 어떠냐? 평소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니 노래방 같은 곳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일정 부분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솔직하게 답한 것에 고맙다고 하고는 당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지만 자주 찾아오고, 힘들면 상의하고, 그러다 보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수도 있지 않겠냐며 절망하지 말고 희망을 갖자고 했다.

햇님이는 그때 예지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과거니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햇님아! 지금은 너에게 어떤 것도 해 줄 것이 없구나. 가끔 네가 찾아오면 밥 사주는 것 밖에는... 그러나 살다 보면 언젠가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그렇게 믿고 그때까지 희망 잃지 말고 살아내자꾸나. 언젠가는 벧엘이 너와 함께 할 날이 있을거야....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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