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벧엘의집 사무국장님으로부터 은수가 약 2개월 전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자신이 살던 방안에서 사망한 지 1주일이나 지나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순간 이런저런 상념들이 교차하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더 강하게 다시 벧엘의집으로 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은수는 벧엘의집을 오랫동안 들락날락하며 벧엘의집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마음씨 착한 청년(?)이었다. 때론 나를 화나게 하기도 하고, 때론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하기도 하고, 때론 보람을 느끼게 하기도 했었다. 그가 처음 벧엘의집에 오게 된 것은 하늘문교회에서 얻어준 방에서 생활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벧엘의집에서 생활하며 자활할 수 있는 길을 찾아주면 좋을 것 같다고 하여 오게 되었다. 체구는 왜소하고 치아는 다 빠져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왜소한 체구 때문에 뒷모습은 어린아이 같았고, 얼굴은 치아가 다 빠져 중년의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로부터 심한 구타와 구박을 받으며 자라다가 중학생 때 가출하여 숙식이 제공되는 일자리를 찾아 떠돌며 생활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눈치는 구단이고 어떤 면에서는 세상을 너무 잘 알고, 어떤 면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벧엘의집에서도 그런 기질을 잘 발휘하여 약방의 감초처럼 무료진료, 대전역 거리급식 등 벧엘의집 활동에 앞장서서 참여하기도 했고 때론 그런 적극성이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특히 대전역 거리급식이나 무료진료 봉사 등 외부에서 봉사자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에는 기를 쓰고 참여하려고 하여 무리가 되기도 하여 종종 주의를 주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생산공동체를 통해 지속 가능한 벧엘공동체를 만들어 보려고 시작한 야베스공동체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아 열심히 일했는데 경영이 어려워졌을 때, 퇴직금을 바로 주지 않았다고 고용센터에 자활담당자를 고발하여 당시 내가 퇴직금을 주기도 했었다. 그 일로 인해 은수는 벧엘의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민망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독립해 보겠다며 퇴소했었다. 그 후 쪽방 주민들을 위한 예비사회적기업인 폐가전 재활용사업단에서 숙식하며 나름대로 명함에는 부장이라는 직함까지 달고 우쭐대며 지냈었는데...

한동안은 나도 화가 나서 진료소를 찾아오거나 대전역 거리급식에 만나면 근황 정도만 확인하고는 다시 오라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미워도 다시 한 번 이라고 한 1년 전부터는 힘들면 언제든지 다시 오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가 벧엘의집으로 온 것이 아니라 영영 하늘나라로 떠난 것이다.

참 인생이 얄궂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생명을 위협할만한 질병을 앓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것일까? 더 강하게 벧엘의집으로 오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어느 교회에서 얻어준 방에서 생활한다고 하여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은수야, 네 말대로 하늘나라에서는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봉사자들과 함께 실컷 봉사만 하면서 지내거라. 너는 진료 봉사든 대전역 거리급식 봉사든 어린 학생들 앞에서는 나름 무게를 잡으며 실무자처럼 행동했었지. 참 고단했던 인생, 그런데도 어린아이처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순수청년 김은수, 천국에서만큼은 누구 눈치 보지 말고 맘껏 너,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지내거라.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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