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순 시인-

▲ 이동순 시인

          누룩 

어둑어둑한 저녁
파장 무렵의 풍각장에서 누룩을 샀다
골라서 열 개만 사려다가
아예 상자째 모두 사버렸다
누룩은 이제 내 방 윗목에서
그윽하고 흐뭇한 향내를 솔솔 피운다
언젠가는 자신이
쓸쓸한 사람에게 찾아가 진실로 하나의 위로가 될
그날을 기다리는 누룩
나도 이 기운 없는 세상을 위해
한 장의 누룩이 되고 싶다
세상의 앞가슴을 온통 술기운으로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하고 싶다
그 누룩과 더불어 한 방에 자면서
나는 누룩이 장차
보드라운 가루로 빻여서
맑은 물과 찹쌀을 따뜻하게 껴안고
항아리의 어둠속에서 이불을 둘러쓰고 숨죽이며
하루 이틀 깊은 사색과
인고의 시간을 보낸 뒤에
드디어 향기로운 정신으로 완성될 그날의 감격을
아늑히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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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시인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시),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평론)/ 충북대학교, 영남대학교 교수 역임/ 신동엽창작기금 수상, 김삿갓문학상, 금복문화예술상, 시와시학상,경북문화상, 정지용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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