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1월이 됐다. 가을과 겨울의 사이에서 왠지 마음이 조급해지고 그러면서도 편안함을 찾고 싶은 것은 다가오는 겨울 준비를 위한 준비 기간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3 학생들은 15일의 수능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준비하고 있으며 어머니들은 김장 준비에 신경을 쓰는 달이기도 하다.

11월은 1년의 석양 무렵이 아닌가 싚다. 지난 여름의 혹독한 무더위와 태풍에 긴장했던 기억은 사라지고 따뜻함을 찾는 시기, 가을 단풍이 떨어지면서 웬지 쓸쓸함을 느끼는 시기, 장롱을 뒤져 겨울옷을 찾아보고 문득 달력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생각해 보는 시기이다. 어둑해진 도로에는 퇴근해서 집으로 가는 발걸음들이 더 분주해 보인다. 그러니 밖 보다는 안(內)인 집안에 있고 싶은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이다.

며칠 전 초등 2학년 손자가 와서 사흘을 묶어 간적이 있었다. 모처럼 왔기에 몇 몇 전시관으로 관람을 다녔다. 하루는 좋아하더니 이틀 째 아침부터 뭔가 불만이 있는 듯 기분이 가라앉은 모습이다. 그러고는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다. “여기 할아버지 집도 네 집이나 마찬가지다. 내일은 더 재미있는 곳으로 구경 가자. 할머니가 맛있는 것 해 주실거야” 몇 번을 달래도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집인데도 제 집이 아니니 뭔가 불편한 모양이다.

집은 안식처이고 지키고 보살펴 주는 곳이다. 그래서 동물들도 제 굴을 파고, 새들도 둥지를 만든다. 후손을 양육하고, 물리적, 정신적 안정을 취하며 가족 간 화목을 다지는 역할을 하는 곳이 집이다.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들의 가장 큰 문제가 “내 집 마련”이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신혼부부들에게 내 집 마련 자금을 낮은 금리로 융자도 해 준다. 연속 드라마에서는 잘 나가는 신랑에게 신부 댁에서 ‘아파트 한 채’가 혼수감으로 등장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등장하곤 한다. 안식처가 있어야 쉼을 얻고 쉰 다음에는 다시 일을 하는 에너지의 충전 장소가 집인 셈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요즘 우리나라 인구의 44.5%가 무주택자라고 한다. 인구의 절반이 제 집이 없다는 심각한 상황이다. 2, 30년 전부터 선거 때만 되면 ‘내 집 마련을 해 주겠다’는 단골 공약이 구호에만 그친 것이 아닌지. 집 없이 길거리에서 사는 사람은 없는 것을 보면 전세나 사글세에 사는 사람들이 인구의 절반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살고는 있어도 내 집이 아니니 그 속에서의 안식은 100% 쉼이 아니리라.

뉴스의 한 화면에서는 아파트 분양 청약 신청 들이 긴 줄을 선 것을 본적이 있다. 그런데 그 중에 정말 내 집이 없어 청약하는 사람들 보다는 있지만 다른 이유로 청약하는 사람도 꽤 많다는 기자의 리포트가 전해진다. 정부에서는 모순점을 해결하겠다고 여러 가지 정책을 발표하지만 크게 개선되는 것 같지는 않다.

지난 10월 2일 심기준 국회의원은 통계청 자료를 분석하면서 기가 막히는 내용을 발표했다. 2016년 말 기준, 19세 미만의 미성년자 주택소유자가 전국적으로 23,991명이라는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그 중에서 5주택 이상 소유자가 108명, 4주택 소유자 30명, 3주택 소유자 95명, 2주택 소유자 948이라는 것이다. 물론 부모의 주택이 혹, 여러 가지 사정으로 상속되어 주택을 소유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2주택 이상 소유한 1181명이라는 숫자는 내 집 마련의 꿈을 갖고 한 푼 한 푼 모아 가는 일반 서민들에게는 삶의 의욕과 희망을 송두리째 뭉개는 - 상실감을 안겨주는 숫자가 아닐까 싶다.

모 일간지에서는 2018년 7월 1일 기준으로 부산의 60대 임대사업자가 604채, 서울의 40대 임대 사업자 545채, 광주의 60대 임대사업자가 531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외 2세, 4세, 5세의 유아들 등 10세 이하 179명이 임대사업자로 등록됐다는 국토교통부의 ‘임대사업자 주택등록현황자료’를 보도했다. 임대사업도 사업의 하나이고 법적 요건을 갖추었을 테니 잘잘못을 가릴 수는 없으나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은 그렇다 치고 5살 이하의 임대사업자라니 이건 정말 상식 밖의 이야기 아닌가? 미성년자는 실질적 사업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한다.

내 재산 내 맘대로 하는데 왜 시비냐고 할지는 모르나, 배골아 죽어가는 사람옆에서 진수성찬 차려 놓고 배불리 먹는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 법을 떠나 도덕적, 인성적으로 생각해 볼 이야기이다. 집은 안식처이다. 그들에게는 집이 안식처라는 생각보다는 높이 쌓여진 돈다발로 밖에 보이지 않을게다.

흔히들 흙수저, 금수저 이야기를 한다. 모 재벌의 딸은 “재산 많은 집에서 태어난 것도 실력의 하나”라고 하여 세인의 빈축을 산 일이 있다. 평생을 넉넉잖은 삶을 꾸려가면서도 모은 전 재산을 학교에 기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런 연말이면 우리들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구세군의 자선냄비에는 서민들의 사랑이 모아지는 것을 저들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집은 결코 돈이 아니고 삶의 안식처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셋방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며 한 푼 두 푼 모아가는 44.5%의 무주택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도 가져 보는지 궁굼하다.

 

 

저작권자 © 뉴스포르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