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향 조재선 시인-

                    청향 조재선 시인

나 허물 벗는 날

나 그동안 너무 행복했노라
맑은 물처럼, 때로는 황홀한 자수정처럼
그대의 두 눈을 통해 바라 본 세상
너무나 아름다워 눈물이 솟구쳐 오르면
어느새 나의 눈물을 끌어
내 몸을 정갈하게 씻기는 그대

나 그동안 감사했노라
아름답게 빚어 놓은 매끄러운 몸
작은 미동에도 바르르 떠는 사랑의 느낌
슬픔을 아름답게 토해 낼 수 있도록
내 입술에 부어 놓은 그대의 선율
목까지 차 오른 나의 감정을
한 오라기도 흘리지 않고
차곡차곡 실을 풀어 주는 그대

나 그동안 미안했노라
허우적 허우적 안개만 가슴에 주어 담다
희끄무레한 꼬리만 흔들어 대는 욕망
암울한 침묵 속에
나를 위해 울고 있을 그대 저주하며
타닥타닥 이유 없이 속을 태우던 분노
깊은 고뇌의 늪에 고집스레 앉아
어둠의 장막을 뒤집어쓰던 일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모두 부질없는 나의 허상이었네

아.......
무로 돌아가는 시간
나의 고왔던 두 눈
나의 사랑스런 두 볼과 입술
손에 척척 감기는 향기로운 머리카락
나를 가장 많이 알 던 그대가
처음 나를 보고 기뻐했을 모습들

이제 허물을 벗노라
두 눈도, 입술도, 고뇌하던 머리도
사랑했던 가슴도 모두 내려놓고
"값지게 잘 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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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향 조재선 시인 : 이학박사(연세대)/한국문인협회 회원/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시집 2권 출간/2018년 Vladivostok마스터클래스(성악)수료/제주공연예술진흥회 회장/연성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강의교수/지샘병원 영양과장/작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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