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일 시인-

▲ 박병일 시인

                 원이 엄마의 편지를 다시 읽다

보셔요
병술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편지를 씁니다
넋 놓고 혼 다 빠져 울지 않으려 이를 악 물고 있어도
이리 눈물이 납니다
당신 날더러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하셨지요
미투리 한번 신어보지도 못하고 깨워도 흔들어도 눈 뜨질 않으시면서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참 그리도 사랑하면서 행복했었는데
왜 이 내 속은 어디다가 두고 혼자 가신다고 하십니까?
날더러 자식들 데리고 살라하고선 그리 떠나가신다 하십니까?
 

당신 내가 죽어서도 못 보냅니다
내 뱃속 우리자식 태어나면 한 백년은 더 世世生生 으스러지도록
우리 사랑 껴안고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원이 아버지
할 말 진짜 많아 다 못 씁니다
이 편지 읽으시고 내 꿈에 나타나 뭐라고 말 좀 하셔야합니다
꿈에 당신 꼭 보리라 믿고 믿습니다
내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에.

*시작노트: 지난 1998년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에서 발견된 400여년전 조선시대의 망자 고성이씨 이응태(1556~1586년)의 무덤 속에서는 그의 아내(원이엄마)가 남편에게 미투리와 함께 “원이 아버지에게”라는 편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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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병일 시인 ; 경북 영덕영해 출생/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1993년'월간 문학세계' 시부문 신인상 등단/우주문학회 교수/2014년 경북문학상 수상/ 시집 :1997년 “아내의 주량은 소주 한 홉이다”. 2003년 "내게 참 좋은 세상 애인 한 명쯤 더 두고 싶다". 2013년 '그대야 오늘처럼 바람 불거든' 출간 등 다수 작품 발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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