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미술관에 갔다. 여러 작품들 중 눈을 끄는 작품이 있어 걸음을 멈추고 보았다. 많은 색색의 점으로 찍은 듯한 그림은 좀 멀리서 보면 산과 강, 그리고 논밭을 표현한 산수화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개개의 점들은 그저 푸른 색, 녹색, 갈색, 등의 점 뿐이었다. 그들이 조화롭게 모이나 멋진 산수화가 됐다. 음악회도 갔다.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각각의 악기들의 소리가 모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더위에 지친 입맛을 돋우자고 모처럼 아내가 고기를 사오고, 상추도 사왔다. 거실 양쪽 창문을 열어 놓으니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상추 겉절이를 했다. 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 깨소금, 간장, 참기름을 살짝 넣는다. 구운 고기 한 점과 상추 겉절이를 입에 넣으니 시원한 바람과 함께 맛을 더한다. 파, 마늘, 고춧가루 개개는 맵고 아린데 함께 어울리니 침샘을 자극한다. 김치도 그렇다. 개개의 맛은 별로인데 여러 가지 양념이 어울려 우리 한국의 맛을 만들어 낸다. 서양 음식에 비해 우리 한국의 음식은 어울림의 맛이 아닌가 싶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어울림의 진행이다. 국에 들어가는 양념도 여러 가지이며 간장, 고추장, 된장도 재료와 과정의 어울림이다. 우리의 소리로 대표 되는 사물놀이는 꽹과리, 징, 장구, 북 등 개개의 소리는 단조롭지만 어울릴 때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소리가 된다.

필자의 식견이 부족한 해석인지는 몰라도 “우리”라는 말이 서양의 “my”라는 말로 대치된다. ‘우리 집’,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my house’, ‘my mother, father’로. 우리는 개개인이 어울리는 존재이고, 서양은 개체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같다. 어울림은 함께이고 조화(調和)를 이루는 것이다.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것-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바로 ‘나’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 물건도 ‘우리 것= 내 것’이었다. 어머니 것, 누나들의 것, 동생의 것도 우리 것이었다. 옆집에 사는 이웃이 아버지 물건을 빌려가서 찾아 올 때도 “아버지 물건 ”이 아닌 “우리 물건”을 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서양의 풍조와 교육(특히 영어)의 양향인지 요즘은 초등학생과 청소년 층의 대화를 들어 보면 ‘우리’보다는 ‘나=내’라는 말로, 또한 각 개개인을 지칭하는 말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우리 것’이 아닌 ‘아버지 것’, ‘어머니 것’으로 말을 하는 경우를 자주 듣는다. ‘우리’를 ‘나’로 사용한다 해서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어울림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몇 년 전 모 프로야구단의 응원 구호 중 하나가 “함께 가자”였었고, go together라는 노래도 있으며,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한 공연과 행사의 포스터에는 “우리 함께 가자”라는 문귀가 들어가고, 4·27 남북정상회담시에도 도로변에 “우리 함께 가자”라는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7월 17일-22일 대전 한밭종합은동장에서 열린 '2018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 에서도 한반도기에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가 씌인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또한 각종 단체들의 친목 행사와 단합대회에서 구호도, 건배사에도 “우리 함께”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참 좋은 일이다. ‘나’만이 아닌 ‘함께=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향상되니 좋다.

그런데 좀 아쉬움이 있다. “우리 함께”라는 아름다운 어울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곳이 있다. 필자가 가 보지 못하기도 했고, 뉴스에 나오지 않아서인지는 모르나 A당의 정책을 놓고 B당이, C당이 “우리 함께” 추진해 나가자고 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좋은 정책이라면 함께 해야 하는 것이 그 분들의 할 일이 아닌가 싶다. A당의 정책이 좀 미비하면 B당이나 C당에서 보완하여 함께 추진하면 안될까? 그것이 진정한 협치가 아닐까?

공동체 의식 함양, 상생, 협동, 협치 등 무수한 말들이 과연 그 낱말 뜻대로 우리의 삶에서 어울리고 있는 지 내 주변부터 살펴보고 반성하고 싶다. 사상 최악이라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괜히 짜증나고, 불쾌지수는 높아만 간다. 무더위도 한철일 뿐, 입추가 지났다. 저 잘난 척 떠들지 말고 이웃과 웃음으로 어울려 더위를 극복하고 곧 다가올 가을의 시원함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1991년 지방의회 선거, 1995년 지방자치 선거로 시작된 현재의 지방자치 제도가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간은 지방자치라 하여 각 지방자치 단체들이 자기 지역만을 위한 정책 개발을 경쟁적으로 하지는 않았나 되짚어 보고 싶다. 물론 그간에도 인근 시·군·구간 공동으로 정책을 개발하여 온 지역도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인근 시·도간, 시·군·구간 어울리고 함께 하는 정책 개발로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지방정부들이 되기를 바래본다.

저작권자 © 뉴스포르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