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寒食)은 동지(冬至)가 지나고 105일째 되는 날(올해는 4월 6일)에 지키는 명절의 하나로 신라 시대부터 지켜져 왔으며 고려 시대에는 4대 명절(설, 한식, 단오, 추석)로, 조선 시대에는 국가에서 한식에 종묘와 각 능원(陵園)에서 제향을 지냈고, 민간에서도 이를 좇아 술, 과일, 포 같은 음식으로 묘소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설이 한 해의 시작이라면 한식은 소생하는 봄의 시작이고 겨울의 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조상의 산소를 찾아 돌보기도 한다. 한식에는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부터 한식을 지켰는데 이 시기가 비바람이 심하여 불 피우기를 금지했다는 습관에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개자추에 관한 이야기- 문왕의 망명 생활 중 개자추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에 문왕을 공경하고, 후에 문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개자추를 등용하지 않음을 뒤늦게 알고 개자추를 불렀으나 개자추가 공을 내세우지 않고 산으로 들어가자 개자추를 나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질렀어도 개자추가 모친과 함께 불에 타죽어 개자추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찬 음식을 먹었다는 전설에서 유래 되었다고도 한다.

필자의 문중도 집안 행사로 해마다 4월 한식이 지난 일요일에 천안에 있는 선영 묘원에서 한식절 행사를 하고 있다. 올해는 늦은 꽃샘추위로 4월 15일에 모였다. 어렸을 때는 매일 보다시피 했던 4촌, 6촌, 8촌들이지만 각자의 삶의 현장이 멀어진 지금은 한식과 추석 때 쯤이나 되어야 만나게 된다(연 2회 선영 묘원에서 정기 모임) 만나면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눈다. 조상의 묘소를 찾는 일 만큼, 형제들 간의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눔도 값져 보인다. 재미있는 일은 손주들을 데리고 가니 해마다 가족 소개를 해야 한다. 1년에 한두 번 보니 누구 아들이고 누구 손자인지 기억이 잘 되지 않는다. 4대조 할아버지 산소 앞의 가족 계보도 비문을 보며 누구는 누구이고 너는 이렇게 된 자손이고 ...... , 그렇게 설명하다보니 어느 덧 큰 손자가 커서 제 사촌 동생에게 설명을 해 준다.

신약 성경의 첫 번째인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하여 예수의 족보로 시작된다. 구약성경 민수기는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의 계파별 족보라고 할 수 있다. 그 만큼 가족 계보는 중요한 것인가 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지금 존재하는 것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내 존재의 의미가 확실해 지는 것은 내 개체 하나만의 유한의 삶이 아닌 조상으로부터 이어지는 무한의 삶으로서의 가치가 담겨 있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근래에 들어 “본관”, “족보” 등의 말이 나오면 고리타분하고 꼭 알아야 하는가라는 일부 젊은 층의 비판도 있지만 이런 한식 등 명절을 기해 한번 쯤 자손들에게 가족 계보와 조상들의 이야기를 되살려 들려주는 것은 자기와 가족에 대한 긍지를 심어주는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본다.

지난 날 교직에 있을 때, 나름대로 설, 한식, 단오, 추석 등 명절 전에 학생들에게 전통명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혹, 본, 본관을 아는 사람?” 하고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몇 명의 학생이 손을 든다. 그리고는 “저는 00박씨”, “00 윤씨” 등 발표를 했다. 그러자 평소 욕심이 많은 학 학생이 “ 선생님, 저는 금암0씨입니다”라고 말했다. 금암0씨? 필자도 처음 듣는 본이라 의아해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친구들이 성씨 앞에 지명을 붙이자 그 학생은 사는 곳이 금암동(충남 계룡시)이기에 금암을 붙인 것이었다. 우습기도 했지만, 조금은 멍했다. 아주 간단한 것인데 가정에서 한 번도 알려주지 않았구나 생각하니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큰아버지께 우리 집 본이 어디인가 알아보라”고 했다. 후에 그 학생이 “금암이 아니고 00”이라고 다시 알려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대전시 중구 뿌리공원로 79에 있는 뿌리공원에는 244개의 성씨별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관람 겸 자신의 뿌리를 알아보기 위해 찾는 유명 장소가 됐다. 해마다 효 문화 축제도 열려 국가 유망 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각 성씨별 비석을 보면 시조의 소개, 성씨 유래, 가문의 자랑거리 등 다양한 내용으로 성씨를 소개하고 있다. 세계에서 보기 드문 공원이다. 오히려 그런 성씨 소개 공원이 있다는 것이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기도 하다.

4월 초에는 한식을 전후하거나 겹치는 청명(淸明) 절기가 있다. 예로부터 나무심기에 적당한 시기이고 논밭둑을 손질하고 가래질을 하며 농사일을 시작하는 시기이다. 한식이 지났으나 미쳐 조상 선영을 찾아뵙지 못했다면 다가오는 주말 아이들과 성묘하며 조상들의 가르침도 되새기고, 겨우내 얼어 솟은 잔디도 돌보고 꽃나무 몇 그루 산소 주변에 심는 일도 뜻있는 일이 아닐까 권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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